어느 덧 아마존에서 일한 지 1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이 거대한 기업에서, 매일 일의 방향이 확확 바뀌는 이 곳에서, 내노라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이 곳에서, 어줍잖은 지식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확실히 1년이 지나니 일에도 적응이 되어 가고, 앞으로 방향성에 대한 제시도 조금씩 하게 됐으며, 팀 내에서 나름 인정을 받고 있다. 다른 아마조니언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 부족하고 경력이 짧지만 지난 1년 동안 느끼고 배운 것을 조금이나마 써보려고 한다.
NOTE: 최대한 제 입장에서 간단히 적은 것이고 자세한 사항들이나 본질적인 부분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1. Amazon.com vs. AWS
간단히 얘기하자면 amazon.com 말 그대로 온라인 상점 플랫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마켓이나 11번가 같은 느낌. 모두다 알다 싶이 아마존은 온라인 서점으로 비지니스를 시작했지만, 지금은 책 (전자책 포함) 뿐만 아니라 세계의 온갖 물건, 온라인 컨텐츠 (비디오, 영화 등), 식료품 주문 등등 사람들의 일생 생활에 아주 깊이 침투되어 있다. 그래서 아마 코로나 같은 국제적인 전염병 발병에도 비지니스 모델 자체가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는 듯. 고객들 뿐만 아니라 판매자들과의 교류도 원활하지만 전체적인 타겟을 놓고 보면 B2C라고 할 수 있겠다.
AWS (Amazon Web Services) 는 좀 더 B2B 비지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가지 콘솔들과 제품들을 개발해놓고 기업들의 각기 필요에 맞는 IT 서비스들을 전반적으로 제공해준다. 워낙 제품군들도 많고 나도 AWS에서 일하지만 쓰는 제품들은 한정되어 있어서, 무엇이 뭘 하는지는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내 직무에 맞춰 많이 쓰는 제품을 고르라면 Redshift랑 S3. 기타 내부 툴도 있지만, 내가 무슨 일을 어떤 툴로 일하는 지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 풀어나갈 예정.
나는 AWS 에서 웹 브라우저 (Silk) 팀에서 일하고 있다. 파이어폭스나 크롬처럼 전반적인 유저들을 상대로 하는 웹 브라우저는 아니고 아마존 디바이스들 (타블렛, Fire TV, Echo Show)에 기본 앱으로 깔려있다. 한마디로 아마존 고객들만을 위한 웹 브라우저를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이다.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B2B가 아니라 조금 더 B2C에 가까운?
2. AWS "Work hard and HARDER"
10년 가까이 미국에서 대학 생활 + 직장 생활 했지만, 내가 봤을 땐 어떻게 보면 아마존이 가장 한국 기업문화에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 경쟁 사회와 워라밸. 아마존 내에서는 대기업처럼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각자 제품군/팀들 마다 하나의 스타트업 회사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전체 기업적인 정책과 사책이 있지만, 또 그 팀 안에서는 조금 더 유동적이거나 까다로울 수 있고 대게 팀 단위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팀 별로, 부서 별로 보이지 않는 경쟁이 다른 미국 회사들에 비해서 조금 더 심한 편이라고 해야하나 (특히 VP나 C level로 올라가면 미팅 시간에 서로를 비난하거나 회의 분위기가 많이 격앙된다는 카더라가 있다;).
특히 AWS 쪽에서 그 부분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다들 미국 회사 생활이라고 하면 (특히 IT 업계에서는) 회사나 직장 상사와의 대화가 조금 더 자유롭고 덜 부담스러운 편이며, 내가 성과를 잘 내는 이상은 필요 이상으로 개인적인 부분에 개입을 하지 않는 생각한다. 물론, 아마존도 그렇지만. 한동안 "Work hard, play hard (일할 땐 빡시게 일하고 놀땐 또 빡시게 놀고!)"라는 모토가 워라밸을 위해서 엄청 유행했지만, AWS는 "work hard and harder (열라 일하고 더 빡시게 일하고!)"로 아주 유명하다. 물론, 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직무 상 하루에 10시간-12시간 일하고 주말에도 일한 적이 많았다. 연봉으로 받기 때문에 추가로 일하는 야간수당/주말수당은 못 받는다는 ㅠㅠ
3. 아마존 리더쉽 원칙 (Amazon 12 Leadership Principal)
기업마다 행동/윤리 강령이 있지만, 아마존만큼 회사와 자기 일에 대한 오너쉽을 주장하고 훈련시키는 회사는 미국에서는 드문 것 같다. 인터뷰 프로세스를 시작하면 인사과에서 제일 먼저 자료를 공유해주는 아마존 리더쉽 원칙. 나의 아마존 인터뷰 경험담은 다른 글에서 썰을 풀겠지만, 모든 인터뷰 프로세스가 이 원칙들에 의거하여 질문 되어지고 답해야 한다. 기나긴 인터뷰 프로세스 통과하고 오퍼를 받아도 OT 첫날부터 저 원칙에 대해서 다시 리뷰하고 다른 직원들고 토론도 해야하니. 그만큼 베조스(Bezos)가 미신(?)처럼 믿고 있는 원칙들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마존이 10년안에 이렇게 거대 기업이 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주위 동료들에게 Learn and Be Curious (끊임없이 배우고 질문하기) 와 Dive Deep (더 깊이 파고들기) 원칙이 강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아무래도 분석가(Analyst)쪽이다 보니 그렇겠지? 아마존 리더쉽 원칙과 또 그에 따른 나의 경험/생각은 다른 글에서 곧 다뤄질 예정이다.
4. 본사가 없어!
보통 세계적인 대기업이라 함은 모든 것이 시작된 본사가 있을 것이고 거기서 여러 곳에 지사가 있는게 대부분이지만. 삼성전자도 본사는 강남에 있고 구글 본사도 실리콘 밸리에 있지만. 아마존은 딱히 본사라고 불릴만한 빌딩이 없다. 구글맵에서 Amazon Headquarter라고 치고 찾아가도 막상 가보면, "애게, 이게 그 유명한 아마존 본사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그랬고).
아마존에서 일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마존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본사"의 개념이 없다. 물론 시애틀이 전반적인 메인 캠퍼스 (South Lake Union)이고 버지니아에 제 2의 캠퍼스를 짓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튼, 우리가 생각하는 본사 빌딩은 따로 없다. 하지만 시애틀 다운타운 내에 키가 큰 빌딩들을 보면 반은 아마존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의 팀은 현재 Coral 빌딩이다 (아마존 소유가 아니고 임대빌딩). 원래는 올해 초에 아마존 소유 빌딩으로 옮기려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모두 캔슬 ^_ㅠ
5. 재택근무 Work from Home
원래 IT 업계는 출퇴근 시간이나 업무 환경, 성과 부분에 대해서 다른 업계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운 편이긴 하지만. 미국 내에서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 주에서 첫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나오기도 했고, 워낙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다 보니 3월 초부터 전 기업적으로 재택 근무가 시작되었다. 강제적인 재택 근무는 아니고 조심하고 예방 수칙 다 따르는 차원에서 회사로 출근해도 되지만, 집에서 파자마 입고 편하게 일할 수 있는데 누가 출근할까?
텍사스에서는 워낙 땅이 광활하기도 했고 차로 출퇴근하는 게 너무 지겨워서, 시애틀에서는 걸어서 20분내로 출퇴근이 가능한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구했다. 처음에는 아침에 출근한다고 꾸미지 않아도 되고 레깅스 + 늘어진 티 입고 일하는 것이 너무 편했는데. 확실히 집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점점 더 힘들어지고 효율성이 떨어졌다. 출근해서 미팅에 참가해야 할 때는 미팅룸에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고려해서 항상 5분을 남겨뒀는데 (30분 미팅 --> 25분; 1시간 미팅 --> 50분), 이제는 물리적으로 이동해야 할 필요가 없다보니 미팅이 앞뒤로 꽉 차 있다 (미국에서는 그 표현을 back to back meetings 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물 마실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잠깐 짬 내서 쉴 여유도 없이 8시간 내내 의자에 앉아있는 상황이 생기다 보니 더 효율성과 집중력이 떨어졌다 (나는). 그래서 가끔은 회사로 일부러 출근하기도 했다. 내 직무 자체가 데이터를 만지는 일이라 회사 내 인트라넷에서 일하는 게 더 빠르기도 했고. 오히려 아무도 없으니까 조용히 집중하기도 더 편하고.
아마존에서는 직원의 업무 효율성을 위해 왠만한 업무용품은 지원을 해준다.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화상캠부터 시작해서 업무용 책상/의자/인터넷 비용까지 (NOTE: 직원 지원 정책은 팀마다 부서마다 다르다). 어떤 팀은 화상 미팅을 할 때 비디오를 꼭 켜야하지만 우리 팀은 그러지 않아도 되서 너무 다행(?)이다.
6. 재택근무로 인한 소득세 문제
아마 코로나가 더욱 장기화 되든 아니든, 이 전염병이 끝나면 모든 업계들의 재택 근무 정책이 많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그 중의 제일 골칫거리는 아무래도 소득세가 되지 않을까? 간단하게 미국 소득세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세전 연봉 (base salary)에 대해서 부과되는 세율이 주마다 다르다. 물론 연봉 금액 티어에 따라 누진되는 세율이 다른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지만. 모든 주가 공통적으로 연방 소득세율을 부과하고 (federal income tax), 주마다 또 부과되는 소득세율이 다르다. 나는 미국 생활하면서 휴스턴/달라스/어스틴이 있는 텍사스 주와 시애틀이 있는 워싱턴 주에 주로 생활했는데, 이 두 주는 주 소득세가 없다. 그래서 매년 세금 보고를 할 때 마다 어려움을 덜 겪는 편이다. 보통 내 직무 시작 연봉은 1억 넘게 시작하지만 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세전 1억 연봉 + 25% 세율로 하자.
보통 미국에서 나 억대 연봉 받는 사람이야 (i.e. 6 figure salary) 라고 하면, "우와 너 돈 많이 번다!" 라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겠지만, 사실 세후 가져가는 금액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위에 말했다 싶이 워싱턴 주는 주 소득세가 없어서 7천 5백만원이 세후 연봉이 되겠다 (물론, 기타 보험이나 다른 세금말고 오롯이 소득세만 따졌을 때). 하지만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면 똑같은 금액을 가져갈 수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캘리포니아 주 세금율에 따르면 25% 말고도 거의 10%가 더 떼어진다. 그럼 1년에 6천 5백만원 버는 셈. 그러니 현실은 억대 연봉자가 아직은 아닌 것이다.
자, 이제 여기에다가 재택 근무를 더해보자. 내가 만약 캘리포니아 출신이고 재택 근무로 인해 더 이상 시애틀에 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치자. 내가 거주하는 주는 캘리포니아니까 실상은 10% 더 소득세가 띄어야한다. 하지만 내가 주소를 옮기지 않고 계속 시애틀에서 산다고 하면 그 10%가 떼이지 않고 내 통장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러면 나는 주머니에 돈이 더 들어오는 셈이니 좋지만 나중에 세금 보고를 하거나 기업 입장에서는 세율이 엄청 꼬이게 된다. 그래서 아마존에서는 다른 주 혹은 다른 국가로 옮겨서 재택 근무하게 되는 경우에는 상사와 인사과/세금과에 보고를 해서 세율을 맞게 적용한다. 시애틀 내에서 사는 생활비나 거주 비용은 많이 비싼 편이라 내가 아는 친구들은 조금 더 싼 교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나도 그럴 예정이고.
다루고 싶은 주제들은 너무나도 많고 다 천천히 글로 써내려 갈 것이지만, 아마존은 매력적인 기업이고, 그의 비지니스 모델이 얼마나 미국 사람들 실생활에 침투해있는지 이해한다면 사실 무서운 기업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시작되고 나서 올라간 주가만 보더라도 ($2,000 -> $3,000)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사실. 앞으로 더욱 커질 일만 남은 아마존 회사 생활에 대해서 자주 적어 나가 보도록 하겠다!